나도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나의 해방일지‘ 속편 같은 건가?
라고 생각이들었던 책 제목.
출간도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가 끝나고 작년 9월에 나와서 제목만 보면 같은 작가가 썼을 것 같은 의심을 받을만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출판사 창비 측에서 제안한 제목이 정지아 작가도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지만 책 내용과 생각해 봤을 때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해방일지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썼을 때 저작권에 문제 되는 부분은 없다고 판단되어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다만 어디가서 제목에 대해 물으면 다 출판사 핑계를 대는 걸 허락해 주는 조건을 걸었다고..ㅎㅎㅎ
평산책방의 여파때문인지 참 책 빌리기 쉽지 않았다.
웬만한 도서관들은 예약이 불가한 수준이었었는데 차라리 책을 사서 보는 게 나으려나? 싶었다가 다행히 지난달 예약 걸어뒀던 도서관에서 입고되었다고 문자를 받고 빌리러 갔었는데 막상 빌려온 당일부터 바빠져서 못 읽다가 거의 반납일에 가까워져서 하루 만에 읽었다.
줄거리 요약
자본주의 한국에서 70년대부터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주인공 아리와의 갈등을 그린 소설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3일간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빨치산의 딸'로 힘들게 살아온 그녀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라는 다소 냉소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
보통 사람보다 더 날카롭고 비판적으로 빨치산 아버지를 보아야만 나중에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할 때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어서 전략적으로 계획된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아버지의 일대기를 그린 자전적인 이야기이면서도 허구의 인물도 첨가된 소설
p.198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빨치산 은 프랑스어로 '동지' 또는 '당파'라는 'parti(파르티)'에서 유래한 partisan(파르티잔)에서 온 말로 일정한 조직체계에 속하지 않는 무장 전사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한국의 빨치산은 항일 무장 투쟁을 하던 1930년대와 1940년대(일제강점기) 중국 북동부 또는 소련 지역에 있던 항일 유격대로, 6.25 전쟁 전후에는 지리산 부근을 근거로 활동했던 무장공비라 불렸다.
일제 해방 이후 사회주의를 신봉했던 사람들이 미군의 박해를 피해서 산으로 숨은 것이 빨치산의 시작이라고 한다.
[출처 : 위키 & 네이버 지식백과]
책을 읽고 나서...
'빨갱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빨치산’이라는 단어는 막상 나에게는 좀 생소하고 와닿지 않는 데다 사투리에 능하지 않은 나로서는 처음에 책이 쉽게 잡히지는 않았다. 딱히 어려운 표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뭐랄까 그냥 공감하기 쉬운 코드는 아니었달까? 작가가 너무 자서전적인 이야기로 비치지는 않았으면 싶어 최대한 해학적이고 유머를 담은 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의 티키타카가 소소히 웃음을 주긴 했다. 어딘가 응답하라 1988의 성동일이 생각나기도 하는) - 술술 읽혀가는 부분이 많지는 않아서 중간중간 몰입이 끊기기도 했다.
하지만 모름지기 무슨 책이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법! 모든 책이 그렇지만 이 책도 끝까지 읽어봐야 하는 것 같다. 앞의 서사들은 마지막 한방의 감동을 위한 밑밥들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온 아버지의 지인들이 조문하고 돌아서면서 딸 아리에게 자꾸만 또 온다고 하는 대목.
한 번으로 끝내 지지 않는 마음이라…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이때부터 조금씩 울림이 있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든 시절을 함께 이겨내고 동고동락 세월을 같이 보내온 부모님 세대분들을 보면 이타적인 ‘정(情)’이라는 게느껴진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한 단어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정‘을 느끼고 싶어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간섭이 싫어 고립을 자청하기도 하지만, 그 질긴 마음들이 가끔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넘의 딸이 담배 피우면 못된 년이고, 내 딸이 담배 피우면 호기심이여? 그거이 바로 소시민성의 본질!
소시민성 하나 극복 못한 사람이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이 부분 말고도 참 유물론을 믿는다는 소설 속 어머니와 아버지의 두 분이 나누는 대화들이 소소하게 웃음을 줬다.
‘맞아, 우리 부모님들도 그렇지.’ 하며 공감했던 부분.
본인만의 신념이나 이념이 있으시면서도 막상 그게 내 자식, 내 안위가 되면 또 달라진다. 이래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이 있는 걸까?ㅎㅎ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빨치산 아버지 본인은 그 신념을 본인이 선택했지만 그의 자식들, 그 가족들은 본인의 선택이 아닌데도 핍박받고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던 당시.
억울할 수 밖에 없던 주인공의 삶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막상 아버지와 화해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히려 해방감을 얻게 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연좌제가 현행 법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통념으로는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가족들이 정말로 아무 상관이 없을 때도 있지만 연을 끊었을지라도 가족 중에 범죄자가 있다면 결국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그 가족들은 안 말리고 왜 방관을 한 건지 화살이 그쪽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근 현대사의 선입견을 가지고 이 책을 접하려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이념을 떠나 책을 다 읽고 나면 나의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 계기를 마련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 좌우 어느 쪽이든 더 흑백논리와 찬반으로 나뉘며 서로 물고 뜯고 혐오하는 지금 우리 현실에 이데올로기를 떠나 따뜻한 사람냄새나는 우리네 이야기가 더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자주는 아니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통화하거나 어버이날이나 생신 때나 찾아뵐 때 대면하고 근황 얘기하는 게 다인데 막상 내 얘기만 할 뿐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게 잘 안 된다. 어릴 때는 '우리 아빠가 최고!'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제 머리 컸다고 아빠보다 아는 게 더 많고 아빠가 옳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변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나와 조금 다른 의견을 주장하시려 하면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모든 걸 다 포용하기란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부모님 세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작가에 대하여
책에 대해 찾아보다가 KBS 뉴스에서 소개되었던 인터뷰 중 정지아 작가가 한 말이 참 와닿는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니까 밉기도 하고 이런 것인데, 사실은 그에게도 그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런 이면을 조금 더 돌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미워하는 마음이 되게 힘들거든요. 미워하게 되면 내 마음이 먼저 망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내 삶이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지려면 '내가 누군가를 잘 모르는구나'라는 전제를 갖게 되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일 것 같습니다."
+ 책을 다 읽고 알릴레오 북‘s에 나온 편을 들었는데 책을 읽고 감상하면 재미가 더 배가 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책 읽고 나서 여운이 많이 남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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